용은 떠나고 메마른 우물은
버려져 있었다, 옛 하서국 사람이
분황사의 용을 저주하여
작은 물고기로 만들어
붓 대롱에 넣어 가려고 했다가
극형에 처하겠다는
왕의 벼락같은 추궁에 놀라
다시 용을 놓아 주었다는 그 우물이다[27]
절을 지키며 뛰어놀았다는 용이
지금 어디로 멀리 갔는지
작은 안내판을 목에 걸친
옛 우물은 마른 먼지만
풀풀 날리고 있었다 우물가에서
발길을 멈춘 나는
옛 신라로
걸어 나갔다가 천년 전 길을 찾지 못해
앞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
눈길 가늘게 뜨고
입시축원
독경 소리만 높은
분황사 뒷마당을 걸어 보았다
원효 강론 시절[28]
이 오래된 우물이
세상에 가득 흘러 넘쳐서
진리를 갈망하던 사람들 구름같이
모여들게 하고
하늘과 땅에 빛을 뿌리던
용이 인간과 더불어
절을 지키던 아름다운 시절이 그리웠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