– 구슬에게
거친 돌의 표면에
일렁이던 햇빛과 바람결
정(釘)으로 가다듬고
돌덩이에서 사물의 형상을 꺼내던
옛 거장의 정교한 눈으로
겨울바람 부는 풍경의 여백을 그릴 때
박수근은 천년
세월을 되살린다
헐벗은 겨울나무들
지상의 뿌리가 하늘 향해 가지를 뻗고
가난한 여인네들
함지박에 남루한 생을 담아
파도치는 시대를 걸어간다
차가운 돌의 숨결에
가슴 저리게 간직한 소망의
탑 축성하기 위해
신라 백제 방방곡곡에서
징발된 무명 석공들은
이승의 무량공덕 빌어가며
얼마나 많은 돌 조각을
비수처럼 제 눈속에
찔러 넣어야 했을까
한 눈 실명한 박수근이[17]
널빤지에 그린
무명 옷 사람들,
그림자 없는 사랑의 탑을
물에 새기던
백제 석공 아사달[18]
아사녀 간절한 피가
화강암 속살에 흘러
함박눈 녹여낸다
겨울나무의 뿌리는
높은 가지 끝에 봄의 새소리를 매달고
아사달의 아기를 등에 업은 아사녀는
봄 그림자 거느리고
오늘의 풍상
소용돌이치는 회갈색 바다 느리게 걸어간다